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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1 칠불사

    지리산 토끼봉의 해발고도 830m 지점에 있는 사찰로, 101년 가락국 김수로왕의 일곱 왕자가 이곳에 암자를 짓고 수행하다가 103년 8월 보름날 밤에 성불했다는 전설이 전해지는 곳이다.

    지리산 최고의 심산유곡에 자리잡아 수많은 고승을 배출하였으나, 1800년 큰 화재가 나서 보광전, 약사전, 신선당, 벽안당, 미타전, 칠불상각, 보설루, 요사 등 10여 동의 건물이 불탔다가 복구되었다. 1948년 여수·순천사건을 거쳐 6·25전쟁 중 다시 불탄 뒤 1978년에 복구하여 지금의 칠불사가 되었다. 운공선사가 축조한 벽안당 아자방(亞字房)은 세계건축대사전에 기록되어 있을 만큼 독특한 양식으로, 서산대사가 좌선한 곳이자 1828(조선 순조 28) 대은선사가 율종을 수립한 곳으로 유명하다.

    아자방은 신라 때 금관가야에서 온 구들도사 담공선사가 만든 온돌방으로, 방안 네 귀퉁이에 70cm씩 높인 곳이 좌선처이며, 가운데 십자 모양의 낮은 곳이 행경처이다. 한번 불을 지피면 49일 동안 온기가 가시지 않았다고 한며, 100명이한꺼번에 좌선할 수 있는 방으로, 건축 이래 한 번도 보수한 적이 없다.

    일곱 왕자를 성불시킨 보옥선사는 거문고의 명인이었으며, 신라 경덕왕 때는 옥보고가 입산해 50년간 30곡의 거문고곡을 지었다고 한다.

    주변에 쌍계사, 청학동도인촌, 청학선원 삼성궁, 화개장터, 섬진강, 하동송림 등의 관광지가 있다.

02 쌍계사

    신라(新羅) 성덕왕(聖德王) 21년(722)에 대비(大悲) 및 삼법(三法) 두 화상이 당(唐)나라에서 육조(六曹) 스님의 정상(頂相)을 모시고 와서 "지리산(智異山) 곡설리(谷雪里) 갈화처(葛花處)에 봉안하라"는 꿈의 계시를 받고 범의 인도를 받아 이곳에 절을 지어 옥천사(玉泉寺)라 하고 조사를 봉안하였다 한다. 이후 문성왕 2년(840) 진감선사가 중창하여 대가람을 이루었으며, 정강왕 때 쌍계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즉, 중국 유학에서 돌아온 진감선사는 차 종자를 가지고 와 이곳 지리산 주변에 심고 대가람으로 중창하니 뒤에 정강왕이 선사의 도풍을 앙모하여 '쌍계사'라는 사명을 내리었다고 한다. 그 후 임진왜란 때 크게 소실되었으며, 인조 10년, 벽암 스님에 의해 중건(이후에도 법훈·만허·용담스님에 의해 중창되었다.)된 이래 오늘에 이르고 있다.

    현재는 서부 경남 일원의 사찰을 총람하는 조계종의 사찰로 25개 본사 중의 하나로 그 자리를 매김하고 있다. 쌍계사로 들어서기 전 나무장승과 큰 바위 두 개가 방문자의 시선을 끌고 있는데, 각각 쌍계(雙溪)와 석문(石門)이라 새겨져 있다. 이는 고운 최치원 선생이 지팡이 끝으로 쓴 글씨라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어 흥미를 끈다.

    삼신산 쌍계사'라는 현액이 걸려 있는 화려한 다포집인 일주문을 지나면 곧바로 문수·보현를 모신 맞배집 금강문이 나온다. 일주문의 현판 '삼신산 쌍계사', '선종 대가람'이라는 글씨는 해강 김규진의 것으로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천왕문을 지나 좀더 발길을 안으로 들어서면, 팔영루를 돌아 대웅전 앞에 설수 있다. 일주문, 천왕문, 팔영루, 대웅전, 삼성각 등의 건물들은 모두 일직선상에 가깝게 배치되어있으나, 산비탈을 이용한 낮은 층단이 계속되고, 또한 중간 중간에 다른 건물들이 비대칭적으로 들어서 있어 문을 하나씩 통과할 때마다 깊숙이 안으로 빨려 들어가는 듯한 느낌을 전한다.

    쌍계사는 범패의 고향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진감선사 혜소가 중국에서 불교음악을 공부하고 돌아와 쌍계사 팔영루에서 우리 민족의 정서에 어울리는 범패(梵唄)를 만들어냈으며, 오랫동안 범패 명인들을 배출하는 교육장으로서의 역할을 해왔다. 팔영루라는 이름도 진감선사가 섬진강에서 뛰는 물고기를 보고 팔음률로서 범패를 작곡해서 붙여졌다고 한다.

    대웅전 옆으로 한적히 자리잡고 있는 부도비가 하나 있는데, 이것이 바로 진감선사 부도비(국보 제 47호)이다. 이 부도비는 최치원 선생이 직접 글을 짓고, 글을 써, 문장을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인정되고 있다. 또한 대웅전 오른쪽의 명부전 앞 큰 바위에는 마애불이 자리잡고 있다. 바위의 한 면을 사각으로 움푹 파내고 그 안에 여래형의 조상을 두껍게 양각하여 감실 안에 불상을 앉힌 것 같은 느낌을 준다.

03 차나무 시배지

    차의 역사는 참 오래인 것 같다. 지금으로 부터 약 1300여년전 신라 선덕여왕 때 당나라에서 처음 차가 들어 왔다고 한다. 흥덕왕 3년(828)에 김대렴이 당나라에서 녹차씨를 가져와 왕명으로 지리산 줄기인 이곳에 처음 심었다고 한다.

    그 후 832년 진감선사가 차를 번식시켰으며 일반 보급은 이때 부터 본격화되었다. 화개 일대의 차는 화개장터 입구에서 12㎞에 걸쳐 차밭이 조성되어 있다.

    화개의 차는 우리 고장의 명산품으로 참선하는 사람이 항상 끓여서 마신다. 한국차의 시배지인 화개는 많은 녹차를 생산하고 있으며 대나무 이슬을 먹고 자란 참새 혓바닥 만한 어린잎을 이른봄에 따 제조한다고 해서 작설차, 또는 죽로차라 불리고 있으며 차는 피로를 풀어 주고 머리를 맑게 해 준다.

    하동읍에서 국도 19호선을 따라 화개 삼거리를 거쳐 10리 벚꽃길을 지나면 쌍계사 근처마을인 석문마을과 신촌마을 사이에 차나무 시배지가 있다.

04 청학동

    청학동은 하동군 해발800m의 지리산 중턱에 위치해 있으며,삼신봉 남쪽자락으로 한폭의 그림처럼 펼쳐진 지리산 마을로 고운 최치원 선생이 은거하던 곳이다.

    전설로는 청학이 많이 노닐던 곳이라는 유래를 가진곳으로 예로부터수많은 묵객들이 삼신봉을 중심으로 살기 좋은 곳,즉 이상향을 찾아 나섰던 바로 그런 곳이란 느낌이 들게하는 산세와 물줄기를 가지고 있다.청학동이란 '푸른 학'이라는 뜻으로 전설에 의하면 청학은 신선이 타고 다니면서 도술부리는 새로서 사람의 몸에 새의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사람들은 청학하면 신선을 상징하고 신선하면 청학을 연상시켰다.

    청학동 사람들은 대부분 논밭에서 식량을 자급하고 양봉과 축산,약초,산나물등을 캐다 팔고 하동장에서 생필품을 구입해 쓰고있다.

    이곳 주민들은 전통적인 생활방식을 고수하며 흰 한복 차림에 처녀 총각 어른은 머리를 땋아 댕기를 드리고 남자 어른은 상투를 틀고 여자 어른은 쪽지를 지며,한결같이 흰옷 도포를 입고 잊혀진 예생활을 다시 시작하였으며,언젠가는 그 이상의 세상이 여기에 올 것이라는 미래의 약속을 기다리며 살아가고 있다.

    청학동 마을에는 서당에서 글 읽는 소리가 낭랑하다. 이 서당에서는 청소년에게 한학과 예절등을 가르쳐주고 있으며,우리의 오랜 옛 생활이 현대와 저만치 거리를 두고 존재하고 있는 곳이다.

05 삼성궁

    청암면 묵계리에 소재하며 한민족의 영산인 지리산품속깊이 청암면 청학동 산길을 휘돌아 1.5Km가량 걸으면 해발 850m에삼성궁이 자리하고 있다.

    이삼성궁에 정확한 명칭은 지리산청학선원배달성전삼성궁으로 이 고장출신 강민주(한풀선사)가 1983년에 고조선시대의 소도를 복원,민족의성조인 환인,환웅,단군을 모신 배달민족성전으로 민족의 정통도맥인 선도를 지키고 신선도를 수행하는 민족의 도장으로 자리잡아가고있다.

06 화개장터

    화개장터는 화개면 탑리에 있으며 5일장이 활발하게 이루어졌던 곳이다.

    지리산 맑은 물이 흘러내려와서 섬진강과 만나는 곳에 자리한 화개, 경상남도와 전라남도를 이어주는 화개장터는 해방전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5대 시장중 하나로 전국의 어느 시장보다 많은 사람이 붐볐던 곳이다.이곳엔 5일장이 섰으며, 지리산 화전민들은 고사리, 더덕, 감자 등을 가지고 와서 팔고, 전라도 구례,경남 함양 등 내륙지방 사람들은 쌀보리를 가져와 팔았다.

    그리고 전국을 떠돌던 보부상들도 이 장을 놓칠세라 생활용품을 가지고 왔으며, 또한 여수, 광양, 남해, 삼천포 충무, 거제 등지의 사람들은 뱃길을 이용하여 미역, 청각, 고등어 등 수산물을 가득 싣고와 이 화개장터에서 팔았다.

    김동리 소설 [역마]의 무대이기도 한 화개장터는 벚꽃길 따라 수많은 관광객이 지리산 쌍계사와 더불어 왕래하고 있으며, 화개장터에서 쌍계사까지 이어지는 도로변은 봄날이면 환상적인 벚꽃터널을 이룬다.

    옛날 시골장터의 정취를 물씬 느낄수 있는 화개장터에는 국밥집, 도토리묵, 개첩국집, 주막, 엿장수, 산나물,녹차 등의 특산품 등이 있어 훈훈한 인심을 주고받는 만남과 화합의 명소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07 하동포구 공원

    남해대교를 건너 하동에 들어서면 19번 국도는 섬진강을 끼고 하동포구 80리를 달린다. 이 길은 구례까지 43㎞로, 봄이면 벚꽃길로 유명하며 국내에서 풍광이 가장 아름다운 드라이브길이다.

    이른 아침 물안개가 감도는 섬진강변은 녹차향과 여름철 맑은 물에서 서식하는 은어향이 가득 스미는 듯하다. 이 길을 따라 하동포구공원, 송림공원, 평사리공원이 있어 여름 섬진강의 정취를 한껏 느낄 수 있다.

08 백사청송 송림공원

    1745년(영조 21) 당시 도호부사(都護府使) 전천상(田天詳)이 강바람과 모래바람의 피해를 막을 목적으로 섬진강변에 식재하였다.

    노송의 수파는 거북의 등과 같이 갈라져서 이 송림을 찾는 사람들로 하여금 옛날 장군들이 입은 철갑옷을 연상하게 한다.

    깨끗한 백사장을 끼고 있으며 숲의 면적은 26,000㎡에 달하고 길이는 약 2km이다.

    260년 된 750여 그루의 노송이 넓은 백사장 및 파란 섬진강 물결과 어우러져 한 폭의 그림을 연상시킨다.

    섬진강의 물결이 굽이도는 경관에는 향수가 어려 시인 묵객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다.

09 한려해상 국립공원

    1968년 12월 31일 우리나라에서 4번째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한려해상국립공원은 2도 4시 2군(거제시, 통영시, 사천시, 여수시, 하동군, 남해군)에 걸쳐 공원구역의 총면적 545.627k㎡(육지 188.64k㎡, 해상 356.978k㎡)에 91개의 섬(유인도 33개 무인도 58개)으로 형성되어 있으며 지역마다 제각기 독특한 경관을 지니고 있다.

    예부터 우리나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바다뱃길로 이름난 한려수도 300리에 점점이 놓여 있는 크고 작은 섬들은 마치 보석을 흩어 놓은 듯 보는이의 마음을 설레이게 하고 태평양을 마주하고 있는 남해의 잔잔하고 영롱한 쪽빛바다. 굽이굽이 다양한 모습을 보여주는 끝없는 해안선, 하얀 파도를 시원하게 가르며 그림처럼 오가는 가지가지의 배들, 곳곳에 깃든 수많은 전설과 역사들을 안고 있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은 우리나라 맨 남쪽인 거제시, 사천시, 통영시, 하동군, 남해군, 여수시에 걸쳐 있으며 각 지역 마다 제각기 독특한 경관을 자랑하고 있다.

    한려해상국립공원은 우리나라의 해상공원으로서는 처음으로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었으며 매년 200만명이상의 탐방객이 이 아름다운 해상국립공원의 경관을 희망과 호기심으로 찾고 있다.

    우리나라에서 두 번째로 큰섬인 거제도의 남쪽해안선을 따라가노라면 깨끗하고 세밀한 모래사장으로 외국인으로부터 더욱 사랑을 받고 있는 구조라해수욕장과 몽돌을 끝없이 펼쳐놓은 학동해수욕장을 지나면 붉은 동백꽃이 곳곳에 그 고운 자태를 뽐내며 무리지어 피어 있는 동백림이 나타난다. 무지개마을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대·소병대도의 잔잔한 바다위에 점철된 섬들사이로 이리저리 다니는 배들은 보는이로 하여금 감탄을 자아내게 한다.

    바다의 금강산이라 하여 해금강이라 불리는 갈곶도는 명승 제2호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사자바위와 촛대바위등 기암괴석과 십자동굴등 해안절벽이 절경을 이루고 있고 이곳의 삼신이 이 마을을 지켜 온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

    한산도를 비롯한 96여개의 크고 작은 유·무인도와 독특한 지형을 창출하고 있는 비진도의 선유봉, 해안굴곡이 심하고 간만의 차이가 적은 남해의 전형적인 해안풍경을 연출하는 풍화리와 학림도, 미륵도의 자연경관과 천연기념물 제63호로 지정된 팔손이나무등 희귀식물이 서식하고 임진왜란 당시 이충무공이 지은 제승당과 한산대첩의 유적지인 통영 한산지구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의 가장 중심지에 위치하고 있다.

    우리나라 남해안 일대에서 물이 가장 깨끗하기로 이름난 곳이 바로 한려해상국립공원내의 사천지구이다. 이곳은 물이 깨끗할 뿐 아니라 물살이 빠른 물목이라 부태꼴 모양의 나무말뚝을 박아 고기를 잡는 원시적 어로 방식인 죽방림이 아직도 있는 곳이며 신수도, 학도, 늑도등 여러개의 섬들이 어우러져 있는 곳이다. 특히 학섬은 작은 무인도로서 오래전부터 수천쌍의 학이 이곳에 서식하였으나 근래에는 환경의 변화로 종적을 감추었으니 안타까운 일이다.

    국도 19호선의 마지막 종착지인 남해섬을 들러 서려면 1973년에 준공된 동양최대의 현수교인 남해대교를 지나야 한다. 남해대교는 길이 660m, 폭 12m, 교각높이 80m인 2차선 교량으로 노량해협을 건너 육지와 연결되어 있다.

    "싸움이 급하니 내가 죽었다 말하지 말라"며 숨을 거두신 이충무공의 한이 서린 남해의 노량 대첩지에는 장군의 뜻을 기리고 장군의 유해가 머물다간 역사적 사실을 알리는 충열사와 이순신 장군이 돌아가신 앞바다, 관음포를 바라다보는 곳에 이락사가 자리하고 있다. 노량지구를 지나 남해섬의 남단으로 내려오면 이동면과 상주면의 경계에 있는 금산을 만나게 된다. 옛날 중국 진시황의 사신 서불이 불로초를 구하러 들렀던 곳, 신라시대 유명한 원효대사, 의상대사, 윤필거사 등 고승들의 기도처, 태조 이성계의 조선건국과 관련한 이야기등 숱한 전설과 신비를 안고 있는 금산은 많은 사람들로부터 영산으로 칭송받고 있을 뿐아니라 문장암, 대장봉, 형리암 등의 기암괴석과 천인 단애한 38경을 안고 있는 산으로서 한려해상국립공원의 유일한 산악공원인 셈이다.

    또한 이곳에는 은은한 금은빛 융단인양 발끝을 간질이는 부드러운 모래알, 잔잔하고 맑은 수면, 백사장과 어우러진 해송의 방풍림이 마치 한폭의 동양화를 연상케하는 상주해수욕장이 있어 산과 바다를 함께 즐길수 있는 천혜의 관광지로 각광받고 있다.

10 지리산 국립공원

전북, 전남, 경남의 3개 도에 걸쳐 있는 지리산 국립공원은 우리나라에서 가장 먼저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명산으로 지역이 넓은 만큼 구경할 만한 관공명소가 수 없이 많다. 경남지역에는 쌍계사, 칠불사등의 절을 비롯하여 불일폭포, 화계계곡, 청학동, 도인촌 등의 관광자원이 풍부하다.

11 화개십리벚꽃

    꽃샘추위가 끝나고 4월로 접어들면 화개에는 그 좋은 벚꽃이 십리에 날려 화사하게 봄을 재촉한다

    화개의 꽃길은 이미 십리벚꽃으로 잘 알려진 길이다.

    마치 꿈길과도 같은 이 길은 서로 사랑하는 청춘남녀가 두 손을 꼭 잡고 걸으면 백년해로한다고 하여 일명 "혼례길"이라고도 한다. 그래서 그런지 수많은 청춘남녀들이 두 손을 꼭 잡고 낭만적인 이 길을 걷는다. 사랑을 맹세하면서.....,하얀 눈처럼 피어난 벚꽂은 섬진청류와 화개동천 25km 구간을 아름답게 수놓아 새봄의 정취를 즐길 수 있는 화사한 볼거리를 제공하며 다채로운 문화행사가 펼쳐지기도 한다

    또한 화개마을 사람들이 직접 생산한 지리산의 향긋한 봄나물을 맛볼 수 있으며, 은어회, 재첩국, 참게탕등 향토음식을 맛보는 꽃잔치 속에서 봄의 향연을 즐길 수 있다.

    전국민이 함께 하는 화개장터 벚꽃축제는 매년 4월초 벚꽃 개화기에 맞추어 지리산 자락과 섬진강 줄기따라 수려한 산수와 천혜의 관광자원이 숨쉬는 화개장터 일원에서 "영호남이 함께 어우러져 만나는 십리벚꽃 세계"라는 테마로 개최된다.

    아울러 벚꽃길 충효동산에서 펼쳐지는 벚꽃축제 제례를 보고, 우리 전통을 느낄 수 있는 민속윷놀이 경연대회, 벚꽃장사 씨름대회를 흥겹게 구경하며 지역주민과 관광객이 함께하는 벚꽃가수왕 선발대회를 통해 노래솜씨를 뽐낼 수도 있다.

12 최참판댁

    지리산 거대한 능선이 남으로 가지를 친 남부능선의 대미에 해당되는 성제봉 아래 넓은 평야지대가 펼쳐진다. 미점리 아미산 아래에서 동정호까지의 넓은 들판, 만석지기 부자를 서넛은 낼만 한 악양 '무딤이들'이 그것이다. 박경리 선생의 대하소설「토지」의 무대로 유명한 악양 평사리는 섬진강이 주는 혜택을 한 몸에 받은 땅이다. 평사리가 위치한 지명인 악양은 중국의 악양과 닮았다 하여 지어진 이름이며 중국에 있는 지명을 따와서 평사리 강변 모래밭을 금당이라 하고 모래밭 안에 있는 호수를 동정호라 했다.

    악양의 아름다움을 노래한 것 중에 소상팔경이 있으며, 평사리들에 위치한 동정호와 악양의 소상팔경은 이곳 사람들의 자랑거리로 한국적인 아름다움이 가득 담긴 풍경을 자아낸다. 또한 형제봉 중턱 300m에 위치한 사적 제151호 고소성은 신라시대 축성한 것으로 섬진강과 동정호를 발 아래 두고 천년의 발자취를 말해준다.

    동학혁명에서 근대사까지 우리 한민족의 대서사시인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의 배경인 이곳 평사리에 소설속의 최참판댁이 한옥 14동으로 구현되었으며, 조선후기 우리민족의 생활모습을 담은 초가집, 유물등 드라마 토지의 셋트장도 조성되어 있다.

    매년 가을이면 전국문인들의 문학축제인 토지문학제가 이곳에서 개최되어 문학마을로써 자리매김될 전망이며 또한 소설속의 두 주인공을 캐릭터로 개발하여 관광상품으로 판매하고 있다

13 하동 중평리 장구섬 화석 산지

소재지 경남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의 장구섬 및 주면 공유수면
소유자 국유, 공유
관리단체 하동군(하동군청)
분야 및 종류 화석산지
지정면적 28,263m(육지부 5.455m/1필지, 공유수면 22,808m)

    중생대 백악기 이매패류인 유삼각조개(Trigonioides sp.)와 낙동의 습주조개(Plicatounio naktongensis)등의 화석과 복족류인 Viviparus sp.화석이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한 상태로 발견된다.

    화석 공룡이빨은 오리주둥이공룡 이빨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조각류 초식동물 이빨화석이고, 남해안 일대에서 산출되는 약 5,000족 이상의 조각류 공룡발자국의 주인공으로 확인되었다.

    악어화석은 원시악어의 머리뼈로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최초의 악어화석이며 국내에서 발견된 모든 육상척추동물의 화석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두개골이며, 이 화석의 발견으로 중생대 기간동안 우리나라에서도 악어가 서식했음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보존상태가 양호한 다량의 이매패류와 공룡의 발자국화석이 산출되며, 악어의 두개골 화석, 오리주둥이 공룡의 화석 거북화석 및 다양한 무척추동물의 생흔화석이 산출된 지역으호 학술적 가치가 높다.

14 옥산서원

    포은 정몽주의 학문과 덕행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서원이다. 정몽주(1337~1392)는 고려시대의 문인으로 성리학을 깊이 연구하였고 문집으로 [포은집]을 남겼다.

    옥산서원은 순조30년(1830)에 후손들이 진주 비봉산 비봉루에 세웠고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고종때 폐쇄되었다가 1965년에 지금있는 자리로 옮겨 세웠다.

    서원안에 있는 건물로는 제사를 지내는곳인 사당, 영각, 배우는 곳인 강당, 유생들의 기숙사인 동재·서재, 장판각,내삼문, 외삼문 등이 있다. 사당 안에는 정몽주의 위패를 모시고 왔으며, 영각에는 영정을 보관하고 있다.

    장판각에는 정몽주의 문집판각 500여판을 보관하고 있다.

15 하동읍성

    일명 「고현성」이라고도 하며 해발 100m의 양경산에 위치하고 조선태종17년(1417)에 축조하여 선조26년(1593) 임진왜란으로 읍기가 소실된바 있으나 임란후에도 계속 지켜오다가 숙종 30년(1704) 하동읍기가 진답(현 하동)으로 옮겨가 폐성되었다. 축성후 287년동안 하동을 지켜온 읍성으로 길이가 약1300m이다.

    폐성후 400여년의 세월이 흘러 색성부분은 다소 훼손되고 성곽돌은 다른곳으로 많이 옮겨져 다른용도로 이용되었으며 석성과 토성의 혼합성으로 모여진다.

16 하동향교

    하동읍 읍내리에 있는 하동 향교는 다른 향교와는 달리 양사재를 세우고, 그 곳에 사마재를 두고 생원 진사에 합격한 선비만 기거하게 하므로써 널리 학문하는 기풍을 길렀고, 횡당계를 조직하여 장학회의 구실을 하게 하여 인재 양성에 힘썼다. 서기 1847년 부사 최섭이 다시 고치고 순종 갑인년에 군수 이장희가 수선하고 순종 경신년에 군수 유상범이 다시 고쳤다.

    그 후 향교의 직원 정구용이 정원과 계단을 보수하고 1968년 전교 정순목이 동쪽 건물을 보수하였다.

    1970년대에 이르러 군비의 지원으로 여러 차례 건물을 보수, 복원하였으며 1990년대에 이르러 주위의 담장을 전면 개수하고 건물을 도색 하여 면모를 일신하였다. 봄과 가을 공자의 제사를 모신다.

    경로효친의 산 교육장으로서 맥을 이어 갈 것이다.

    1983년 8월 6일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23호로 지정되었다.

    지방의 관학기관으로 1415년(태종 15)에 지금의 고전면 고하리에 창건하였다. 1593년 임진왜란으로 완전히 소실된 것을 1603년(선조 36)에 이경호가 다시 중건하였으며, 1736년(영조 13)에 민진기(閔鎭箕)가 횡천(橫川)으로부터 현재의 위치로 이건하였다. 1847년(헌종 13)과 1920년, 그후 여러 차례 중수하였다.

    현재 경내 앞쪽 낮은 터에는 누문인 풍화루(風化樓), 유생의 거처인 동재(東齋)•서재(西齋), 강당인 명륜당(明倫堂)이 자리잡아 강학공간을 이루고, 뒤쪽 높은 터에는 내삼문(內三門)과 문묘(文廟)인 대성전(大成殿), 동무•서무가 자리잡아 존현공간(尊賢空間)을 이룸으로써 전학후묘(前學後廟)의 배치를 이룬다.

    풍화루는 1966년에, 서재는 1984년에 재건한 것이다. 대성전에는 5성(五星)과 10철(十哲), 송조6현(宋朝六賢), 한국 18현(十八賢)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다.

    조선시대에는 교관이 30명의 교생을 교육시켰으나, 갑오개혁 이후 교육적인 기능은 사라지고 현재 봄과 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17 경충사

    진양정공 보국숭록대부 충의공 정기룡 장군의 사당이다. 정기룡의 호는 매헌이고 조선시대인 1562년(명종 17)에 출생하였으며, 1622년(광해군 14) 2월 한산도 통제영에서 삼군 통제사 재임 중 죽었다.

    정기룡은 무과에 등급한 뒤 임진왜란 당시 경상 우도방어사 조경 장군이 적에게 포로가 되자 구출에 성공하여 장군의 명칭을 얻었다. 그뒤에도 크고 작은 싸움터에서 80여 회의 승전을 거듭하였다. 광해군 재위시 지중추부사, 오위도총부총관, 도총관, 삼도 수군통제사를 거쳐 보국숭록대부에 이르렀다. 이 사당은 장군의 충의를 이어가고자 지방 선비와 후손들이 1932년에 건립한 것으로 장군의 제사를 모시고 있다.

    1989년 이후 경충사 성역화 사업이 본격화하면서 하동군 청소년 수련마을이 마련되어 있다. 주변의 유명한 관광지로는 한려해상국립공원이 있다.

18 불일폭포

    불일폭포는 지리산 10경의 하나이다. 쌍계사에서 3km지점에 있어 쌍계사를 답사한 후 불일폭포를 등산하면 좋은 여행이 된다.

    쌍계사에서 등산로를 따라 4백m쯤 오르면 국사암이라는 조그마한 암자가 있는데, 삼법화상이 신라 성덕왕 21년(722)에 건립하여 수도하던 곳으로 삼법화상이 입적한 후 110년만에 진감선사가 중건했고, 이로 인해 국사암이라고 이름 지었다.

    또 이 국사암 입구에는 진감선사가 심었다는 사방으로 뻗은 네가지로 된 거목인 사천왕수가 특이하다. 국사암 가는 삼거리에서 불일폭포 방향으로 가면 커다란 반석의 바위가 있는데 고운 최치원이 학을 부르며 놀던 곳이라 하는 환학대이다.

    여기서부터 최치원이 찾아다녔다는 이상향 즉 삼신동의 운치가 느껴진다. 숲속을 지나면 널따란 불일평전에 불일휴게소로 불리는 아담한 집과 정원이 특이하다.

    이 휴게소에서 약 2백m가량 깍아지른 듯한 비탈길을 내려가면 거대한 깊은 곳에 있는 불일암 밑의 만길절벽에 흘러내리는 불일폭포가 하늘에서 떨어지는 물줄기처럼 중간의 학연에서 돌려 다시 쏟아져 내린다.

    높이 60m, 폭3m의 지리산 유일의 자연적으로 이루어진 거폭으로 상하 2단으로 되어 있는 폭포이며, 계절에 따라 수량의 차이는 있으나 연중 단수의 고갈은 없다.

    폭포 밑에는 용추못과 학못이 있어 깊은 자연의 신비를 안겨주기도 한다. 떨어지는 물소리는 탄금의 소리가 울리고 고려시대 학이 날아오르는 모습에 비쳐 자청색이 영롱해서 놀았다는 청학봉, 청학동이라고 이름지은 봉과 골이 있으며. 남명 조식의 시와 정재규, 서산대사의 시들이 있어 곱고 아름다운 신비경을 보여주는 곳이다.

    불일폭포 오른쪽에는 불일암터가 있는데 보조국사 지눌이 수도했다고 한다. 그 곁으로 삼신봉 가는 등산로가 있어 역사와 문화를 함께 느끼며 심신을 단련하기 좋은 곳이다.

19 남도대교

    2003년 7월 28일 전남 구례군 간전면 운천리와 경남 하동군 화개면 탑리 사이 섬진강을 가로지르는 남도대교가 개통됐다. 경남도와 전남도는 이날 오전 11시 구례군간전면에서 두 지역 주민 5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준공을 축하하고 두 지역의화합을 기원했다.

    이 다리의 사업비 217억원은 국비에서 132억원을 지원받고 경남도와 전남도가분담한 85억원으로 충당했다. 길이 358.8m 너비 13.5m 규모의 ‘닐슨 아치교’로구조물을 대칭이 되게 설계해 동서화합의 상징성을 표현했다.

    빨강색과 파랑색의양쪽 난간 아치는 섬진강 물결에 태극 모양으로 비친다.

    광양의 매화와 구례 산동의 산수유, 하동의 벚꽃이 영호남 ‘꽃띠’로 묶이고,화개장터와 〈토지〉의 고장 최참판댁을 비롯해 섬진강과 지리산 등지의 영호남명소가 이어져 관광 활성화가 기대된다.

20 지리산역사관

장대한 지리산 계곡자락에 위치한 지리산역사관은 여러가지 전시물을 통하여 지리산을 안고 살아온 우리 고장 조상들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으며 빨치산 관련 전시물은 이데올로기로 인한 우리민족역사의 교육장을 제공하고 있다.

위 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대성리 1389번지
규 모 부지면적 : 4,806㎡
건축면적 : 149.4㎡
동수 : 1동
층수 : 1층
주요시설 : 전시실
사용신청 및 문의 공공시설관리사업소 관광시설부서 운영담당 (☎ 055-880-2381)
편의 및 부속시설 야외화장실 : 1동
주차장 : 약 15대
파고라 : 1개소

21 백련리도요지

    백련(白蓮)리 새미골 도요지는 16.17세기 조선 자기의 본류인 분청, 상감, 철화백자를 굽던 곳으로 전통 막사발의 본고장이자 일본 국보 찻잔인 이도다완(井戶茶碗) 생산지로서 명성을 이어오고 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일본은 하얀 연꽃이 어우르진 이곳 백련리 도요지에서 투박하면서도 새의 붉은 혓바닥과 이슬을 머금은 듯한 독특한 문양으로 누구도 흉내낼 수 없었던 눈박이 사발과 도공을 강탈해 가 자기네 국보로 둔갑시켜 숭앙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으로 1974년 경상남도기념물 제24호로 지정되어 옛 도공의 후손들이 조선 막사발의 명성을 재현하고 있으며 2002년 국내 영화사상 최초로 칸느 영화제 본상 수상의 영예를 안겨준 영화 취화선의 촬영장으로 활용하기도 하였다.

    하동군은 매년 5월 25일 차의 날을 전후해 이곳 백련리 도요지에서 도예(淘藝)와 백련지(白蓮池)를 주제로 찻 사발 축제를 개최하고 있으며 2004년부터 아름마을 조성사업을 추진하여 도예 체험과 연지 산책등 농촌 테마형 문화체험이 가능하도록 각종 편의시설과 테마시설을 지속 확충중에 있다.

    남해고속도 진교 I.C에서 진교 시내를 지나 1002호선 지방도를 따라 남서방향으로 2km쯤 가면 백련리 사기마을 입구가 나온다.

    여기에서 동네로 들어오면 입구에 주차장과 찻집, 식당시설이 있고 동 네를 가로질러 도예체험장, 전시장과 흰 연꽃이 피는 백련지가 위치하고 있다.

22 차문화센터

장대한 지리산 계곡자락에 위치한 차문화센터는 하동군의 특산물인 야생차의 홍보를 활성화 하기위하여 설립되었으며 차문화센터에는 하동야생차의 우수성, 재배방법, 재배기구, 야생차종류, 여러 가지 다기 등이 전시되어 있는 전시실과 다도를 배우고 하동 야생차의 맛을 느껴볼 수 있는 다실이 있다.

위 치 경상남도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897-1번지
규 모 부지면적 : 15,478㎡
건축면적 : 744.53㎡
동수 : 1동
층수 : 3층
주요시설 : 전시관, 세미나실, 다실
사용신청 및 문의 공공시설관리사업소 문화체육시설 운영담당(☎ 055-880-2402)
편의 및 부속시설 조경 : 11,600㎡
야외무대 : 1개소
취사장 : 1동
목재파고라 2동
야외화장실 : 1동
주차장 : 옥외 10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