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1 쌍계사 진감선사대공탑비
| 종 목 | 국보 제47호 |
|---|---|
| 지정일 | 1962. 12. 20 지정 |
| 소 재 |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
신라 정강왕이 신라말의 고승 진감선사 혜소의 높은 도덕과 법력을 앙모하여 대사가 도를 닦은 옥천사를 쌍계사로 고친 뒤 정강왕 2년(887)에 건립한 것으로 고운 최치원 이 비문을 짓고 썼으며 승,빈영이 새겼다.
이 탑비는 고운 최치원의 사산비의 하나로 유명하다. 진감선사는 애장왕 5년(804)에 입당 흥덕왕 5년(830)에 귀국 쌍계사를 창건하고 역대 왕의 존경을 받다가 문성왕 12년(850) 쌍계사에서 77세로 입적하였다.
혜소는 민애왕의 사호이고 진감은 헌강왕의 추사이다.
비의 높이는 3m 63cm, 탑신의 높이는 2m 2cm, 폭은 1m, 귀부와 이수는 화강암이고 비신은 흑대리석이다.
현재 비신의 우측 상부에 크게 흠락된 부분이 있고 또 균열이 상당히 심하다. 최근에 별도로 기둥을 세워 수리해 놓았다.
p귀부와 이수는 그대로있고, 귀부의 귀갑에는 넓은 구획 선으로 육각갑문을 간결하게 새겨 넣었다. 중앙에 높집한 비좌를 마련했는데 4면에는 운문이있고 상면에는 비신에 맞게 구멍이 뚫어져 있다.귀두는 짧고 추상적인 동물의 머리로 표현되어 신라후기의 특징을 보이고 있다.
이수는 양측을 비스듬이 자른 오각형으로 4면에 쟁주하는 용이있고 전면 중앙에 방형으로 깊이 판 제액이 마련되어 있으며 비문의 자경은2.3cm, 자수는 2,423자이고 고운 최치원이 짓고 썼다.
02 쌍계사 목조삼세불좌상 및 사보살입상
| 종 목 | 보물 제1378호 |
|---|---|
| 지정일 | 2003. 8. 21 지정 |
| 소 재 |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
쌍계사 목조삼세불좌상 및 사보살입상은 대웅전에 봉안되어 있는 석가모니불 중심의 삼세불좌상 및 일광·월광·관음·세지보살 추정의 네 보살입상이 한 조를 이루는 칠존불 형식이다. 대부분의 불상이 1639년 목조로 조성으로 파악되나 우보처불인 아미타불상만이 조성시기(연대미상)와 재료(종이), 양식적 특성이 다르다. 따라서 문화재로 지정된 것은 아미타불상을 제외한 6구만 지정되었다. 최근(2002.11.)에 개금불사를 시행하여 보존상태가 양호하다.
쌍계사 목조 삼세불좌상 중 석가모니불과 약사불의 크기는 높이 172-203cm이고, 무릎폭 120-134cm이다. 사보살입상의 크기는 높이 177-186cm이다. 개금불사시에 발견된 복장기에 의해서 1639년 비구 청헌(淸憲)을 비롯한 11명의 화승에 의해서 제작되었음을 알 수 있다.
석가불(本尊佛 ; 中央에 위치)은 양쪽 어깨를 덮은 옷을 걸치고 허리를 곧추 세운 채 머리만을 앞으로 살짝 내밀고 눈을 내려 떠 있어, 굽어보는 것과 같은 자세에 딱 벌어진 어깨와 넓은 무릎을 하여 건장하고 안정감이 있어 보인다. 손모습(手印)은 왼손을 무릎 위에 두고 오른손을 무릎 아래로 내린 항마촉진인(降魔觸地印)으로 적당한 크기에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표현하여 조화로움은 물론 사실성이 돋보여 장인의 뛰어난 조각 솜씨를 느끼게 한다.
약사불(左輔處佛 ; 向右)은 본존의 오른쪽에 안치되어 있는 상으로 본존불에 비하여 보처불로서 크기가 다소 작고 손모양[아미타인 중 下品中生印]이 달라졌으며, 얼굴과 귀가 약간 길어지고 변화된 착의법과 옷주름이 보다 복잡해진 점이 다르나 거의 동일한 양식적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사보살입상은 약사불과 아미타불(右輔處佛 ; 向左) 좌우에 위치한 네 구의 보살입상으로 일광·월광·관음·세지보살상으로 생각된다. 상의(上衣) 재료는 적송(赤松)이며 손과 발은 별도로 만들어서 끼웠다. 그리고 어깨 위로 굼슬거리고 길게 드리워진 머리칼 역시 목재(木材)가 아니라 옻칠과 황토를 혼합하여 만든 다음 별도로 부착하였고, 등 뒤에 복장구(腹藏口)가 마련되어 있다.
약사불의 협시인 일광·월광보살상은 관의 중앙에 해와 달을 상징하는 둥근 모양의 원판이 마련되어 있으며, 손에는 연꽃가지를 들었다. 그리고 아미타불의 협시불인 관음·세지보살상은 화려한 큰 꽃판에 지물로는 연꽃가지(관음보살)와 정병(세지보살)을 들었다.
쌍계사 대웅전 봉안의 칠존불상 중 아미타불을 제외한 석가모니·약사불 및 사보살상은 신체 각 부의 비례가 조화로움은 물론 밋밋한 듯 하면서도 부피감이 있어 보이는 신체와 원만한 상의 얼굴, 사실적 표현의 손발을 비롯하여 불의와 천의자락 등에서 세련된 솜씨를 보여준다. 따라서 17세기 불상 중 수작으로 평가되며, 17세기경의 불상 연구에 좋은 자료가 된다.
03 쌍계사 팔상전 팔상탱
| 종 목 | 보물 제1365호 |
|---|---|
| 지정일 | 2003. 2. 3 지정 |
| 소 재 |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
‘도솔래의상(兜率來儀相)’으로부터 ‘쌍림열반상(雙林涅槃相)’에 이르기까지 모두 여덟 폭이며 각 폭마다 동일하게 하단에 화기를 갖추었는데, ‘옹정(雍正) 6년(年)’이라는 조성연대와 ‘일선(一禪)·후경(後鏡)·명정(明淨)·최우(最祐)·원민(元敏)·처영(處英)·신영(信英)·영호(永浩)' 등의 화원을 명기하고 있어 1728년 8명의 화승들이 참여하여 조성되었음을 알 수 있다. 패널형식의 각 폭 모두 주요 내용만을 중점적으로 나타낸 간단한 구도로, 건물의 위치 및 형태와 구조, 이야기의 전개방식과 내용, 장면 구분방법, 인물과 경물의 배치와 표현에 이르는 구성이 3년 앞서 1725년에 그린 순천 송광사 팔상도와 비교할 때 색채만 약간 다를 뿐 거의 같은 도상을 보여주고 있어 동일본을 사용하여 그렸음이 짐작된다.
각 폭의 장면은 건물과 구름·나무·산을 이용하여 구분짓고, 각 장면마다 이에 따른 내용을 적어 놓고 있어 그림을 이해하기에 쉽다는 특징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각 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목의 표현은 도식적이지 않고, 일반회화 속의 나무와도 같아 매우 자연스럽고 사실적이다.
현존하는 석가팔상도 가운데 용문사본(1709년)에 이어 비교적 제작시기가 빠른 편에 속하며 공간감과 색채의 조화 등 그에 상응하는 화풍상의 특징도 보여주고 있다. 여유로운 경물의 배치와 함께 일반회화에서 볼 수 있는 수목의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표현기법 또한 18세기 전반의 상도나 감로왕도 등에서 종종 보여지고 있어, 당시 또는 앞선 시기 일반회화와의 관계까지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는 데 자료적 가치가 있다.
각 폭의 장면은 건물과 구름·나무·산을 이용하여 구분짓고, 각 장면마다 이에 따른 내용을 적어 놓고 있어 그림을 이해하기에 쉽다는 특징이 있다. 그 가운데에서도 각 상에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수목의 표현은 도식적이지 않고, 일반회화 속의 나무와도 같아 매우 자연스럽고 사실적이다.
현존하는 석가팔상도 가운데 용문사본(1709년)에 이어 비교적 제작시기가 빠른 편에 속하며 공간감과 색채의 조화 등 그에 상응하는 화풍상의 특징도 보여주고 있다. 여유로운 경물의 배치와 함께 일반회화에서 볼 수 있는 수목의 자연스럽고 사실적인 표현기법 또한 18세기 전반의 팔상도나 감로왕도 등에서 종종 보여지고 있어, 당시 또는 앞선 시기 일반회화와의 관계까지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다는 데 자료적 가치가 있다.
04 쌍계사 대웅전 삼세불탱
| 종 목 | 보물 제1364호 |
|---|---|
| 지정일 | 2003. 2. 3 지정 |
| 소 재 |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
석가모니불도를 중심으로 좌측에 약사불도, 우측에 아미타불도를 배치한 삼세불도이다. 중앙의 석가모니불도는 화면상단 중앙에 큼직하게 본존불을 그린 다음, 좌우 대칭되게 문수·보현을 비롯한 8대보살과 제석·범천, 2위의 타방불, 가섭·아난존자를 위시한 10대제자, 용왕·용녀와 6금강, 2위의 사천왕을 배치하였다.
17∼18세기 유행의 전형적인 키형 광배에 항마촉지인의 본존불은 육계가 뾰족하며, 머리에는 중앙계주와 정상계주가 큼직하고 이목구비는 단정하나 몸의 형태가 네모꼴을 이룸으로써 18세기 후반의 불화들에서 나타나는 경직성을 느끼게 한다.
좌협시불도(향우(向右))인 약사불도는 아미타인과 같은 손모습을 하고 왼손에 약합을 든 약사불을 중심으로 좌우로 대칭되게 일·월광보살을 위시한 6대보살과, 2위의 사천왕, 12신중을 그려 놓았다. 전반에 걸쳐 인물의 형태와 색채 및 표현기법 등은 석가모니불도와 유사함을 보이나, 아미타불도와 함께 화면 구성이 다소 느긋함을 볼 수 있다.
우협시불도(향좌(向左))인 아미타불도는 주불을 위시하여 주위에 빙둘러서 관음·세지보살을 포함한 8대보살과 2위의 사천왕, 2위의 타방불, 마치 16나한의 모습과도 같은 10대제자를 배치시켜 놓았다.
이 삼세불도는 18세기 전반 전라도지역에서 크게 활약했던 대표적 불화승 ‘의겸(義謙)’으로부터 1780년대의 ‘승윤(勝允)’ ‘평삼(平(評)三)’으로 이어지는 불화승의 계보를 파악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할 뿐만 아니라, 완전한 형태를 갖춘 18세기 후반의 대형불화로서 비교적 정교한 필치와 화려하면서도 은은함을 보여주어 화풍파악에 있어서도 빼놓을 수 없는 수작으로 평가된다.
05 쌍계사 대웅전
| 종 목 | 보물 제500호 |
|---|---|
| 지정일 | 1968. 12. 19 지정 |
| 소 재 |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7 |
조선 중엽에 세워진 전형적인 목조 건물로서 봉황이 날 듯한 처마의 곡선미가 잘 조화된 우수한 건축물이다. 정면 5칸, 측면 4칸의 단층 팔작지붕 건물로 바닥에 마루를 깔았고 중앙 후면의 불당 위에 닫집을 달았다.
팔작 다포계 건물인 대웅전은 그 짜임새가 완벽하며, 정면 중간의 3칸은 사분합의 빗살문이며, 창방 밑으로 교창을 달았다. 좌우 끝쪽의 퇴간 기둥을 좁혀 두 짝의 정자 살문을 달았다. 공포는 내외 3출목, 쇠서는 수서 셋과 앙서 하나로 되어 있다. 앙서는 짧고 내부에는 첨자가 모두 이두식이어서 비교적 오래된 양식임을 보여주고 있다.
중앙 석가모니불을 주불로 하여 우측에는 아미타불, 좌측에는 약사여래불을 모셨으며 사이 사이에 관음, 세지, 문수, 보현의 4보살을 모셨고, 벽면에는 수점의 탱화가 걸려 있다.
진감선사가 신라 문성왕 2년(840)에 초창한 이래 임진왜란 때 절이 불에 탔던 건물을 조선 인조 19년(1641)벽암(각성) 스님의 중수, 수구종 21년(1695) 백암(성종)스님의 중수, 영조 11년(1735) 법훈스님의 중수를 거쳐 오늘날에 이르렀다.
06 쌍계사 부도
| 종 목 | 보물 제380호 |
|---|---|
| 지정일 | 1963. 1. 21 지정 |
| 소 재 |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47-1 |
쌍계사에서 북쪽으로 300m 거리의 작은 산동우리 위에 조성된 부도로서 쌍계사의 창건조사인 진감선사가 입적한후 전신사리를 인장한 사리탑으로 신라 헌강왕 11년 (885)에 조성되었다.
전체높이 2.05m의 8각 석등형 사리탑 으로 8각 원당의 기본을 따라 하대는 8각으로 복연 8엽을 부각하였고 중대 역시 8각주에 안상을 새겼다.
상대의 앙연석에도 큼직큼직한 연화 8엽으로 하대의 복연석과 대칭하고 있다.
그 위에 탑신을 받기 위한 8각의 별석을 얹었는데 전면의 운문이 양각되어 있다. 탑신석도 8각인데 귀기둥에는 아무런 조각도 장식하지 않았다.
이 부도는 각부분의 조각에 다소 형식화되고 또 균형을 잃는 점이 보이나 안정감이 충분하고 품위가 있는 작품이라 할 수 있다.
07 쌍계사 팔상전 영산회산도
| 종 목 | 보물 제925호 |
|---|---|
| 지정일 | 1987. 7. 16 지정 |
| 소 재 | 경남 하동군 화개면 운수리 208 |
팔상전의 후불탱화로 봉안되어 있는 이 불화는 조선후기(1687년)의 영산회상도이다.
비교적 큰 편에 속하지만, 화면을 압도하는 중앙의 본존불과 비교적 굵직하게 묘사된 협시보살상들 때문에협시들의 수가 줄어들고 있다. 즉, 4천왕·4보살·6제자·4분신불(分身佛)과 타방불(他方佛)·4구의 팔부중(八部衆)·이청문중(二聽聞衆) 등이 본존불은 건장하고 풍만한 모습을 과시하고 있는 원만상(圓滿相)의 불상인데, 조선 후기 불화로는 드물게 보는 것이다. 육계는 뾰족하고 계주는 큼직한 것으로 청주보살사의 괘불(1649)이나 화엄사의 괘불(1653)의 본존불과 흡사하다.
얼굴은 둥글고 풍만한 데다 눈·코·귀·입 등이 작고 부드러워 원만상을 이루고 있다.
우견편단(右肩偏袒)으로 벗은 상체 역시 둥근 곡선으로 처리되어 풍만함을 자랑하고 있으며, 따라서 당당한 체구의 형태를 잘 묘사하고 있다. 본존불의 풍만한 형태는 보살이나 기타 협시상들에서도 그대로 묘사되어 전체 불보살들이 환하고 원만한 모습을 보여준다.
색채는 이러한 형태에 알맞게 밝으면서도 부드러운 중간색조를 사용하였으며, 본존의 옷깃이나 옷무늬 등 역시 17세기 중엽경의 특징을 고스란히 갖추고 있어서 17세기 후반기의 불화임을 한눈에 볼 수 있다.
08 하동읍성
| 종 목 | 사적 |
|---|---|
| 지정일 | 2004. 5. 31 |
| 소 재 | 경남 하동군 고전면 고하리 산 151번지 일원 |
하동읍성은 옛 하동현의 진산(鎭山)이었던 양경산(陽慶山, 해발 149m) 남쪽 기슭에 위치한다. 이 성은 여말선초(麗末鮮初)에 잦았던 왜구의 침범을 막기 위해 태종 14년(1417년)에 축성되었다. 하동읍성은 관청은 물론 민가를 보호하는 행정적·군사적 중심지로서 수행하였으나 숙종 29년(1703년) 읍기(邑基)를 지금의 하동읍으로 옮기면서 폐성되고 말았다. 하동읍성은 2중구조로 안쪽에는 돌[石城]로, 바깥쪽은 흙[土城]으로 쌓아올렸다.
4개의 성문(城門)과 3개의 옹성(甕城)이 설치되었으며, 적들이 쉬운 접근 하지 못하도록 내성과 외성 사이를 4m 깊이 도랑[垓字]을 설치하였다. 성의 규모는 전체 둘레가 약 1,400m, 성벽의 폭은 4.5m 정도 이고,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기록에 의하면, 성벽의 높이는 5.2m 정도로 아주 높았다고 한다. 성내에는 우물 5개소와 연못 1개소가 있어 성내 거주민의 식수 및 생활용수로 이용되었다. 하동읍성은 임진왜란 때 사용되었던 총을 비롯한 여러 유물이 발견되었으며, 성곽이 잘 보존되어 1999년 8월 6일 경상남도 기념물 제217호로 관리되다 2004년 5월 31일자로 국가지정 사적으로 승격 지정되었다.
09 하동고소성
| 종 목 | 사적 제151호 |
|---|---|
| 지정일 | 1966. 9. 6 지정 |
| 소 재 | 경남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산 31번지 |
이성은 지리산에서 뻗어 내려온 산줄기의 형제봉 중턱 해발 300m 고지에 있다.
성벽은 둘레 약 560m, 높이 3.5~4.5m, 그 단면이 사다리형으로 가공한 장방형의 석재를 써서 견고하게 쌓고 남북에 두 개의 성문이 있다.
이 성의 유래에 대해서는 여러 문헌에 전혀 기록이 보이지 않고 하동지에 미루어 볼 때 600년대 신라가백제를 공격할 때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원군인 위병의 섬진강 통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구축한것이 아닌가 한다.
동북은 험한 산줄기를 등지고 서남으로는 섬진강과 동정호를 눈 아래에 둔 천연의 요충지로서 남해에서 호남으로 통하는 길목이다.
10 천년기념물 제477호 (하동 중평리 장구섬 화석산지)
| 소재지 | 경남 하동군 금남면 중평리의 장구섬 및 주면 공유수면 |
|---|---|
| 소유자 | 국유, 공유 |
| 관리단체 | 하동군(하동군청) |
| 분야 및 종류 | 화석산지 |
| 지정면적 | 28,263m(육지부 5.455m/1필지, 공유수면 22,808m) |
중생대 백악기 이매패류인 유삼각조개(Trigonioides sp.)와 낙동의 습주조개(Plicatounio naktongensis)등의 화석과 복족류인 Viviparus sp.화석이 보존상태가 매우 양호한 상태로 발견된다.
화석 공룡이빨은 오리주둥이공룡 이빨로서 우리나라 최초의 조각류 초식동물 이빨화석이고, 남해안 일대에서 산출되는 약 5,000족 이상의 조각류 공룡발자국의 주인공으로 확인되었다.
악어화석은 원시악어의 머리뼈로서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최초의 악어화석이며 국내에서 발견된 모든 육상척추동물의 화석중에서 가장 완벽하게 보존된 두개골이며, 이 화석의 발견으로 중생대 기간동안 우리나라에서도 악어가 서식했음을 증명하는 자료이다.
보존상태가 양호한 다량의 이매패류와 공룡의 발자국화석이 산출되며, 악어의 두개골 화석, 오리주둥이 공룡의 화석 거북화석 및 다양한 무척추동물의 생흔화석이 산출된 지역으호 학술적 가치가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