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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평출신 이원범 항일투사 건국훈장 추서

작성자
이민행
작성일
2026-03-04
조회
14
함평출신 이원범 항일투사 건국훈장 추서
순국 106년만 인정…경남향토사학자 정재상씨 노력 결실

경남 하동문화원 향토사연구위원회 정재상 위원장의 끈질긴 노력으로 구한말 을사늑약(1905년) 이후 국내에서 항일 무장 투쟁을 벌이다 순국한 전남 함평군 나산면 출신 이원범(李元範) 의병장 등 28명이 순국 106년만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은 사실이 뒤늦게 알려졌다.
정재상 향토사연구위원장은 “지난 2월 토지주택 박물관과 국가기록원에서 항일의병장 등 259명의 문건을 찾아 의병장 41명의 공적서를 만들어 정부에 서훈을 신청했는데 이중 28명이 이번 광복절에 독립유공자로 인정받아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 받았다”고 지난 8월 28일 밝혔다.
의병장 이원범(李元範/이명 이정섭李丁燮  ~1908년 11월 7일)은 전남 함평군 식지면 수치리(현 나산면) 출신이다. 1905년 을사늑약 이후 1907년부터 그의 부친 이남규(李南奎)와 함께 기삼연 의진()에서 맹활약했다. 그러던 중 1908년 11월 7일 그의 부친 이남규(기삼연 후군장)와 전주 남문밖에 살고 있던 이내구(李內逑)와 함께 군자금을 모집하던 중 체포되어 3명 모두 총살됐다. 이번에 정위원장의 노력으로 건국훈장을 추서 받은 항일의병장 28명은 전남출신 6명, 전북 3명 경남 12명, 경북 5명, 강원도 2명이다.
이들은 1905년 을사늑약 이후 1907~1909년 사이, 50~400여명의 의병대를 조직하여 전라도와 경상도 강원도 일대인 지리산 가야산 태백산맥에서 일제에 맞서 항일투쟁을 벌이다 일제의 ‘남한 대 토벌작전’때 체포되어 학살 당하거나 전사 순국했다.
정재상 위원장은 “항일의병들은 온몸으로 일제에 저항하며 목숨을 바친 분이다”며, “이번 훈장추서는 항일투사들의 민족애와 나라사랑 정신의 숭고한 뜻을 다시한번 생각하게 한다”고 밝혔다.(경남 하동문화원 경남독립운동연구소 055-883-3963/011-838-3963 정재상)
◈정승유 의병장
하동 출신의 정승유 의병장은 지리산을 중심으로 항일투쟁을 벌이다가 체포되고 나서 총살당했고, 합천 출신의 신상호 의병장은 일본군에 의해 모진 고문 끝에 칼로 무참하게 살해됐다. 전남 곡성의 손학곤 의병장은 머리가 박살 나 처참하게 순국했다
◈김수영(金壽榮) 의병장
김수영 의병장은 1905년 치욕적인 을사늑약이 체결되자 1907년 삼척 등지에 격문을 붙이고 의병 100여 명을 모아 삼척 육백산과 탕실, 석개 등지에서 항일투쟁을 벌였다.
김 의병장은 특히 총칼로 중무장한 일본군에 맞서 육탄전까지 감행하며 의병을 이끌었다. 김 의병장은 그러나 1907년 12월 17일 삼척 도계 육백산에서 일본군과 교전을 벌이다 체포돼 이틀 뒤인 19일 총살됐다.
◈김성산(金成山) 의병장
강원 출신의 김성산 의병장은 삼척군 장성면 황지리에서 의병 150명과 함께 항일투쟁을 전개했다. 그는 특히 경북 봉화군 고직령까지 범위를 넓혀 일제와 투쟁을 벌였다.
그러나 김 의병장은 1907년 11월 18일 경북 봉화군 고직령부근의 전장에서 일본군에 체포돼 무참히 학살됐다.
김 의병장을 따라 투쟁을 벌인 항일투사 50명도 현장에서 일본군에게 무자비하게 처형됐다.
◈신상호 의병장
경남 합천 출신의 신상호 의병장은 1907년부터 가야산과 지리산 일대에서 의병활동을 벌이다가 체포됐는데 일제는 '도륙'이라는 표현이 어울일 만큼 칼로 잔인하게 찔려 죽였다.
1908년 체포된 전남 곡성 출신의 손학곤 의병장은 일본군 진영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나서 머리가 박살 나 처참하게 죽어갔다.
◈김진명 의병장
전북 진안 출신의 김진명 의병장은 1907년 의병 100여 명을 지휘해 경찰서 등을 습격하다가 체포돼 모진 고문 끝에 목이 잘려 순국했다.
◈손학곤 의병장
전남 곡성 출신의 손학곤 의병장은 1908년 체포되어 일본군 진영에서 모진 고문을 당하고 나서 머리가 박살 나 처참하게 죽어갔다.
/이민행 대표기자